
통일은 일상의 회복이다.
사범대학 / 교육학과 / 문건우
여전히 분단되어 있음을 느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순간에도 전쟁은 도사리고 있음을 체감했다. 분단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슬픔과 분단으로 기뻐하는 자들의 이익을 인식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분단이 아직도 우리를 속박하고 있음을 나라의 최전방에서 깨달았다. 분단을 배우며, 통일과 평화를 이룰 이유를 어렴풋이 떠올렸다.
먼저 제2땅굴에 방문했다. 좁고 어두운 굴을 걷다 보니, 깊고 단단한 땅굴을 어떻게 팠을지 의아하였다. 인솔자께서 북한이 3년 반 동안 3.5km를 겨우 파내다 발각된 것임을 알려주셨다. 설명을 듣자, 굴에서 폭약을 설치하고 화강암을 캐내면서 위험에 노출됐을 북한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분단된 현실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땅속으로 내몰린 노동자들과, 지금도 북한 정권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과 겹쳐 보였다. 독재적인 정권과 주민을 동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처럼 북한 정권에 의한 군사적 갈등에도 고통받는 주민들을 염두에 두어야 함을 생각하였다.
땅굴을 오가면서 인솔자께서는 지뢰 이야기를 하셨다. 한국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강이 범람하고 홍수가 나면 떠내려온다고 하셨다. 제거 작업 중에 지뢰로 생을 달리한 사연도 들려주셨다. 이후에 지뢰 경고 표시를 여러 번 마주했다. 그것들로 71년 전 일어난 전쟁으로 인한 무기가 여전히 상처를 유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지뢰로 다치거나 죽은 동물들이 많다는 설명을 들으며, 전쟁으로 그곳을 살아가는 동식물도 고통받음을 생각했다.
민간인 통제구역에 평야만이 아닌, 모가 질서 정연히 꽂히고, 맑은 물이 가득한 논밭도 있음은 흥미로웠다. 농민들이 통행증을 지니고 일정 시간에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과거에 식별하려 붉은 모자를 썼음이 인상적이었다. 더운 날씨에 모자를 벗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비폭력적으로 농사함에도, 폭력적인 구조에 살아가기에 일상적인 행위에조차 폭력이 행사된 것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강압적 행위가 빈번치 않고, 민간인 통제구역이 줄어 주민들의 편의가 증진됐음은 다행스러웠다. 농민들이 기른 벼들은 과거 북한에 보내졌고, 지금은 초등학생들을 위해 쓰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전쟁이 가득한 그곳에 평온히 작물이 자라고 있음은 분단에서 평화로 전환될 가능성을 내포한 듯 보였다.
철원평화전망대에 올랐을 때, 무엇보다 북한이 내다보이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망대가 위치한 그곳이 남방한계선이고, 너른 평야에 나무와 풀이 우거진 땅에 군사분계선이 존재하며, 그 너머에 북한 초소가 있어 인공기가 휘날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자연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도 충분한 푸른 대지가, 분단돼 갈라진 장소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망원경 렌즈에 보인 북한 군인은 반대편 우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을 지녔을지 궁금했다.
월정리역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일제강점기 선로와 침목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만져보니 여느 철, 나무와 다를 바 없이 따뜻하고 온화했다. 그런 작고 녹슨 물체조차 무던히 오랜 시절을 버텨와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내가 서 있는 그곳이 후고구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수백 년 역사, 짧게는 일제강점기부터 지속된 역사를 지녔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기차와 철로 옆에 형상화된 태봉국 궁궐이 있어 장소가 지니는 고유한 이질감과 기이함을 증폭했다.
특별히 방문한 철원 남북 산림 협력 센터는 색다른 곳이었다. 산림에 관해 남북이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할 장소로 여겨졌다. 북한 산림의 병충해 문제를 분석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산림 보호를 위해 협력할 기관이다. 산림 복구에 활용된 나무 여러 종과, 남북 산림에 피해를 주는 해충들을 살펴보았다. 해설자분의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북한 산림이 직면한 문제를 깨닫고, 이것을 해결하고자 남북이 교류할 필요성이 대두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스스로 묘목을 화분에 심어보는 진귀한 경험도 해보았다. 버스를 타고 내리며 바라본 센터 뒤 우거진 산과 푸른 하늘은 슬프게도 아름다웠다.
평화학교에 가기 전, 노동당사에 방문했다. 비록 복원 공사로 가려졌지만, 매체로만 접하던 노동당사 건물을 실제로 마주하자, 건물이 지닌 거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노동당사 앞에 분단된 시간을 기록하는 시계가 있다. 그것을 보며 분단된 시간이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이 체감됐다. 그곳에서 콘서트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분단과 관련된 장소에서 통일과 평화를 문화적으로 누리면서, 그에 관한 논의의 접근성이 확대될 수 있음을 떠올렸다.
국경선 평화학교는 자유롭고 평화로움이라는 가치를 공간적으로 구현한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시설이 크진 않지만 안락했다. 그곳에서 식사한 후 학교장님의 특강을 들었다. 시민사회에서 분단을 극복하면서 통일의 필요성을 직시하고 행동할 필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그간 통일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신 학교장님과 국경선 평화학교의 노고에 감사했다.
다음 날, DMZ 생태 평화공원에 들어갔다. 두 산책로 가운데 용양보 산책로를 걸었다. 군인들의 엄격한 통제 아래 이루어진 산책이지만, 통제 속 자유로움을 느끼며 가볍게 거닐었다. 산책로 옆에 펼쳐진 자연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비무장지대의 자연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자체의 모습을 지녔다. 맑은 물에는 구름이 담겨 하늘과 호수를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산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우거진 산림을 이루었다. 그런 자연 사이를 걸으니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곳은 엄연히 군사지역이자, 최전방이었다. 주변의 군인들과 군사시설로 전쟁과 분단의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남방한계선과 북한에서 내려온 하천을 보면서 분단된 남북 현실을 마주하면서, 이념과 사회적 이익 이외에도 산과 강, 새 같은 자연을 매개체 삼아 남북이 지닌 공통점을 도출해 평화를 진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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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 여행으로 통일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이론적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 본연이 지닌 아름다움, 그리고 철원을 살아가며 매일 분단과 마주하는 이들을 경험했다. 여행을 통해 ‘통일은 일상의 회복’이라고 인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