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은 흐릿해져 가는 시간의 과업이다.
창의공과대학 / 게임콘텐츠학과 / 김현중
과거 코로나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시절인 2020년 여름, 나는 9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여 파주시 임진 강 인근으로 정보병과로 파견을 나가 그곳에서 2022년 새해까지 군생활을 하였었다. 그렇다. 나에게 분단 의 현재를 볼 수 있는 최전방, DMZ라는 장소는 생소하지 않은 꽤나 익숙한 장소였다. 솔직하게 최전방을 방문하게 될 줄이라고는 일말의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군생활을 지낸 군필들이 우스갯소리로 자대 방 향으로는 쳐다도 안 본다는 말들을 하듯이 말이다. 다만 파주에서 강을 통해 바라보던 DMZ 풍경과 철원에 서 바라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평화여행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철원에서 다시 보게 된 최전방 DMZ의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 그 자체였다. 산천은 푸르고 맑았고 국군이 설치한 광망이 주렁주렁 매달린 길다란 철책들과 초소들 그리고 멀리, 어쩌면 가깝다고 표현해도 좋을 위치에 육안으로도 보이던 북한군의 GP들이 자연풍경에 이질감을 주고 있는 익숙한 풍경. 강만 보이 지 않았다 뿐이었지 파주에서 군인으로서 바라보던 바로 그 풍경들이었다. 약 2년하고도 반정도 전의 과거 의 나는 그런 풍경들을 바라보며 최전방에 위치한 군인으로서 분단의 현실을 체감했었다. 최전방이라는 위 치 탓에 만성적으로 긴장감을 가진 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떨면서 시간이 어서 지나길 바라며 복무하였었다.
그러나 DMZ에서 나오고 군복무의 과거에서 빠져나오자 그때 보고 느꼈던 분단이 아닌 비슷하면서도 다른, 미처 그때는 신경쓰지 못했던 또다른 분단의 현실이 느껴졌었다. 철원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민 간인들이 체감하는 분단을 말이다. 내가 1년 6개월 동안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감, 긴장감은 이곳의 주민들 에게는 일상과도 같았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의 삶에 녹아 들어있었다. 더불어 온전한 권리조차 누리 고 있지 못했다. 자신이 가진 땅에 방문하기 위해 민간인통제선에서 출입허가를 기다리는 삶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단으로 인해 최전방의 사람들은 삶과 권리를 침해 받으며 살고 있었다. 군복무기간에도 자주 보았던 모습이었지만 그때는 군인과 최전방, 그리고 양국관계의 냉각화 라는 위치와 상황이 만들어낸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였으나 민간인이 된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곳의 일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의미의 씁쓸함이 느껴지게 하였다. 평화 롭지 않은 현실 때문에 결국 피해를 보고 이를 감내하는 것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평범한 삶일까? 만성적으로 긴장하고 때때로는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항 상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삶이라는게 과연 올바른 삶의 모습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평 화를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현재와는 별개로 최근의 사람들은 분단을 당연시하고 통일을 기대하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사람들은 북한과의 반복되는 관계 개선과 악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지금을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에게 통일이라는 말은 붕 뜬 소리 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로테이션 돌려가며 최전방 관광을 시켜서 분단의 아픔 과 체감을 느끼게 할 수도 없다.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고 그런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런 생각 도 들었다. 어쩌면 통일을 부분적으로 라도 갈구하게 되는 세대는 지금의 내 세대가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미래에 철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단으로 인한 불편함을 불편함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통일이란 흐릿해져 가는 시간의 과업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마치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시간이 다 지나면 모두 떨어져 가라앉듯이, 사람들이 더 익숙해 지기 전에 더 흐릿해지기 전에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다짐으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 이는 양국의 통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의미에서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작은 평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권리를 침해 받지 않을 수 있기 위한 작은 평화 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평화여행을 다녀오며 그런 날이 내가 더 늙기 전에 도래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게 되었다. 내 후대는 내가 느꼈던 군인으로서의 분단도, 철원의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민간인으로서 의 분단도 느끼지 않았으면 하니까.